12월 2일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김은경 최성수 박경종 노희섭 추희명 허철수

서울시가 제작하면?
전 한동안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있었는데 오페라는 뮤지컬의 원류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도 사실이고 뮤지컬을 보다보면 오페라 자연스레 관심을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현대적 음악에 가벼운 내용을 지향하는 뮤지컬에 비해 대부분 비극적인 내용이 주류인데다 인간의 목이라는 악기를 이용해 이 악기로 어디까지 소리를 낼수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는 듯한 오페라에 흥미를 못느끼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요. 또 뮤지컬은 비교적 연극에 가까운 구성을 가지지만 오페라쪽은 대부분 두, 세막 정도 막을 가지는데 한 막엔 한 무대세트를 고집하는게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심층적으로 공부하지 않다보니 왜그런지는 잘모르겠고 막안에 굳이 다른 장소가 필요하다면 커튼을 내리거나 조명으로 공간을 만들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1막의 한장소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잘난척하기 위해 굳이 이 얘길 쓴건 아니구요. 연서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그렇네요.

본 후기에는 '연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는 듯하지만 글을 읽어보시면 '연서'의 스포일러는 없으며 도리어 '피맛골 연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자막으로 등장인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 해주는데 인물소개 부분에서 아륵이란 인물이 도실을 사랑해서 그녀를 구하려다 남자주인공이 죽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뒤에 줄거리가 따로 나올텐데도 말이죠. 이 모든건 도실을 사랑하여 그녀에게 구혼했으나 집안에서 거절하자 집안을 몰락시킨 후 도실은 기생이 되게되고  재필이 다시접근하자 복수심으로 그의 가산을 탕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비단 장사를 하는 아륵은 비가 많이 와서 길이 진탕이 된 날 진탕길을 건너가지 못해서 안절부절하는 도실을 수레에 태워서 도와주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천에다가 글씨를 땋아 연서를 만듭니다. 이게 1막 시작전 줄거리고 이걸 자막으로 보여줍니다. 위에 오페라의 특성을 설명한 이유가 이겁니다. 이걸 극으로 보여주면 될 것을 한막의 무대로 모든 사건을 보여줘야하니까 당연히 작품에 대한 공부를 안해왔을 관객을 위해 몇분의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자막을 보여주는 것이죠. 3막짜리 인터미션뺴면 2시간 10분짜리 작품인데 자막에만 10분넘게 할애합니다.(막 전환때 자막이 좀 깁니다.) 뮤지컬도 줄거리 설명용 자막이 나올때도 있으니 그럴수 있다지만 제가 굳이 제기하고 싶은건 노래가사 자막도 따로 나오면서 1막줄거리까지 설명해야하냐는 거죠. 어쨌든 막상 공연을 시작하면 도실과 아륵이 사랑을 느끼게된 스토리, 둘간의 사랑의 아리아, 도실이 재필을 몰락시킨 얘기가 다 따로 넘버가 있으며 재필이 도실에 집착하여 그녀와 동반자살하려고 아륵의 비단가게에 불을 지르고 아륵은 연서로 그녀를 감싸서 구하게 되고 죽게됩니다. 근데 연서의 저주로 인해 정령이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됩니다. 어라? 뭔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서울시 제작 뮤지컬 '피맛골 연가'를 연상시키네요. '피맛골연가'에서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연인을 감싸기 위해 죽임당하고 그 역시 구천을 떠돌죠. 심지어 배경도 비슷합니다. 굳이 세트제작 따로 할 필요 없이 피맛골 연가 세트가지고 해도 될정도입니다. 전 혹시 피맛골연가 극본가가 같은가 했습니다만 그렇진 않더군요. '피맛골연가'와 연관시켜 홍보포인트를 잡았던 작품이라 너무 연관되어버리더군요. 결말도 어떻게 보면 비슷합니다.
서울시에서 영혼의 사랑이야기를 써보라고 다른 두 극본가에게 의뢰라도 한듯한 비슷한 느낌의 스토리입니다.

이대로 2막은 일제강점기로 들어갑니다. 역시 구구절절한 자막. 친일파 재필은 성악가 도실이 공연에서 '봉선화'를 부르자 일본인들이 체포하려하자 그녀를 구해냅니다. 그녀에게 청혼하려하자 도실의 노래를 듣고 연서에서 갑자기 아륵이 나타납니다. 전생에 죄를 폭로하고 그를 비난하고 도실이 재필을 피하자 재필은 연서를 칼로 찢어버립니다. 그러자 아륵은 다시 사라지죠. 이러고 2막이 끝납니다. 그리고 곧바로 3막 현재의 서울입니다. 한복디자이너 도실은 우연히 연서를 발견하고 복원하려고 합니다. 그녀의 약혼자 재필은 꺼림직해하며 연서의 복원을 말리나 도리어 파혼당합니다. 제가 그동안 언급안했는데 나레이터에 속하는 서점주인이 1, 2, 3막을 걸쳐서 대를 이어 연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연서를 복원하게 되면 전생의 사랑을 다시 만날 수있지만 같이 하늘로 올라가야한다고 합니다. 무사히 한복패션쇼를 마치고 연서를 선보이자 갑자기 쓰러지고 아륵이 그녀를 데리고 올라갑니다.



줄거리가 왜...
저는 보통 후기에다가 줄거리를 잘 안씁니다. 제 필력으로 써봤자 지루하기도 하고 딱히 내용을 공부해가야하는 공연이 아닌 이상에는 비록 속편 작품이어도 대사 몇마디정도에 그 인물간의 과거관계정도는 금새 유추해내니까요. 뭐 그러지 못하는 관객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공연보기 전에 그렇게 구구절절히 줄거리를 썼어야했냐고 묻고 싶었고 어차피 오페라가 가사전달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으니 친절히 가사자막까지 다 넣었으니 말이죠. 사실 이 '연서'란 매개체가 웃깁니다. 1대 서점주인이 그런걸 만들면 저주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도 아륵은 그걸 만들고야 맙니다. 사실 사랑하는 여자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머리카락으로 글씨를 땋다니요. 혈서의 몇배는 섬뜩합니다. 결국 그게 저주의 매개체가 되서 몇세대가 되도 그 여자를 쫒아다니는 셈이죠. 사실 일제강점기의 재필은 친일파라는게 큰죄긴하지만 딱히 도실에게 해코지 한게 없는데 전생의 죄때문에 헤어져야한다고 하고, 현재의 서울에서도 저주받은 천쪼가리에 사로잡혀서 약혼자와 파혼하고 그 천쪼가리를 완성하자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얘기에 불과합니다. 재필은 전전생의 죄때문에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구요. 블로그 보니까 원래 줄거리는 재필이 도실을 죽이게되자 죽은 영혼이 아륵을 만나 하늘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던데 재필이 사회적 지휘가 있는 사람인데 파혼당했다고 굳이 연인을 죽인다는 설정을 결국 수용하지 못한 듯 하더군요. 저주의 연서가 환생을 거듭해가면서도 쫓아오고 결국 사랑했던 연인을 죽인다는 줄거리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걸까요?

극본뺴곤 다 훌륭한...
1막의 구성과 연출과 그 화려한 무대는 음악 창작오페라가 이렇게 잘만들수도 있구나를 보여줍니다. 동선조차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할정도로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 배우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입니다. 사실 피맛골연가에 무대를 비교하기 미안할정도로 엄청나게 잘만들었는데 1, 2막 배경이 두작품이 너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비교할 수 밖에 없더군요. 원래 아리아를 먼저 듣고 갔었는데 무척좋았는데 제가 3층에 있어서 그런건지 막상 김은경씨의 가창력은 3층까지 박수를 치게 만들진 못하더군요. 오페라는 왠간하면 박수를 아끼지 않는 편인데 말이죠. 3막은 막전환때 자막에서 갑자기 은근슬적 서울시 홍보를 열심히 하던데 서울에서 하는 작품을 굳이 서울시 홍보를 그렇게 할필요가 있었나싶은데.. 광화문 광장을 형상화해서 만든 무대는 패션쇼장으로 멋들어지게 변하긴 했지만 전막들의 압도적인 세트를 생각하면 살짝 아쉬움이 드는건 사실이었습니다. 노래도 무척좋아요. 소셜커머스 할인때문에 예매하긴했지만 홍보용으로 쓴 아리아가 너무 좋아서 무리해서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Full(?)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맛도 있었구요. 올해는 클래식에 관심을 너무 안줬구나라며 후회까지 들더군요.

원래 오페라는 뮤지컬보다 더 극본이 허술합니다. 가능하면 두세군데의 장소에서 모든걸 해결해야하기때문에 별별 무리수를 다 둡니다. 근데 연서는 애초 근본적인 설정이 말도 안됩니다. 도실이 아륵을 사랑하게 되니 망정이지 스토커도 이런 스토커도 없습니다. 저주의 편지를 만들지 않나 환생할때마다 쫓아다니는데다 전생의 죄뿐 아니고 전전생의 죄때문에 연인을 찢어놓은거죠. 그리고 이 모든건 사랑때문이다. 그런건 사랑이 아닙니다. 제가 너무 단정적인걸까요?

by 단열했니 2010. 12. 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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