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AL
헤드윅 (김재욱 전혜선)
단열했니
2011. 6. 22. 05:38
6월 19일 - KT&G 상상아트홀
김재욱 전혜선 (김재욱 막공)
* 유럽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한국남자들은 어릴때부터 슬픔이란 감정표현을 억압받아옵니다. <남자는 울면안된다.>란건 현재까지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병약한 마초들이 많습니다. 마초로 태어난 사람들이나 마초즘을 유지하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억지 마초로 살아가다보니까 외강내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뭐 저도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슬픔을 표현하는 것보다 슬픔을 억누르는걸 더 아프게 다가와합니다. 슬픔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공감을 얻으니까요.
제가 바로 전에 봤던 김재욱의 헤드윅은 울지않아서 더 슬펐고 이번에 본건 너무 울어서 되려 저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잘하는 분들은 조금은 다르겠죠. 사실 헤드윅이란 작품의 내용은 그자체로 이미 너무 슬픈데 너무 우니까 무대에서 그저 한풀이만 하는거 같기도 하고 '슬픈건 알지만 이렇게 사람들 많은데서 그것도 공연 중에 그렇게 울어야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셀/헤드윅 슈미트는 트랜스젠더이고 이츠학은 드랙퀸이죠. 육체적 성별은 헤드윅은 여성이 된 것이고, 이츠학은 여전히 남성입니다. 실제론 헤드윅은 여배우가 했어야했을수도 있고 이츠학은 영화처럼 남자배우가 해야했겠죠. 물론 헤드윅이 나중에 토미가 되야하니까 남자배우가 헤드윅을 하는게 맞겠지만요. 저도 머리속으로 정리가 안되는 가운데 타이핑하고 있는데, 김재욱의 눈물의 헤드윅이 그가 연기했던 헤드윅이 이란 이야기속에 한셀/헤드윅은 언제부터 그렇게 울었을까요. 한셀도 유년시절만 놓고 봤을땐 억압받고 감정을 절제당해왔으니까요. 아마 그 물꼬를 틀어준게 음악이었겠죠. 예술은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속에 완성되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하여 한셀/헤드윅은 유년시절부터 흘리지 못했던 모든 눈물을 하룻밤 공연에 완전히 탕진해버리고 모든걸 산화하고 본인마저도 산화시켜버렸죠.
* 전혜선 이츠학은 헤드윅을 미워하는 전형적인 이츠학을 보여주는데요. 저 개인적으론 츤데레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서포트역할을 하면서 엉터리로 할 수 도 있는대 해야할 일 다하면서 증오를 드러내니까 제가 보는 느낌은 '딱히 널 위해 이런걸 준비하는건 아냐.'란 느낌이죠. 욕하고 분노하고 반항할거 다해가면서 챙길건 다 챙겨주고 슬쩍 슬쩍 쳐다보며 발그레해하지만 헤드윅과 눈이라도 마추지면 잡아먹을듯 미워합니다.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가 보통 그냥 헤드윅의 백업보컬이자 스테이지 매니저같은 관계에 그치는데요. 이번 버젼 전체적으로 그런지 다양한 관계가 보이네요. 서로 다른 방법의 사랑으로 말이죠. 어쨌든 헤드윅은 산화했지만 이츠학은 드랙퀸으로서 살아가겠죠.
* 사실 이전 공연의 헤드윅은 그저 드랙퀸같긴만 했습니다. 사실 원작 헤드윅이 드랙퀸같았죠. 헤드윅은 드랙퀸이 아닌데란 생각은 들었지만, 트랜스젠더와 드랙퀸의 차이는 미첼이 더 잘알아서 잘했겠지만요. 혹은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여성화가 되는건 아니어서 과한 화장과 요란스런 치장을 해야했는지도 모르죠. 존 미첼의 의도가 그러한건지 아님 미국쪽 트랜스젠더들은 다 드랙퀸처럼하고 다니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사실 그쪽 세계를 피상적으로만 알지 제대로 알아볼 기회도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았거든요. 적어도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을 통해 여성으로서 살아가면 되고 드랙퀸들은 게이이기도 하고 그저 여장자체를 좋아하기만 하는 경우라고 알고 있어서 말이죠. 이번 헤드윅에선 첫의상은 반짝이 매니아인 중년여인같은 느낌이고 두번째 의상은 갑자기 브라이스 인형이 생각나더군요. 브라이스 인형이 딱 어떤 스타일이 있는건 아닌데 이건 브라이스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님 김재욱이 입었기때문에 브라이스 인형이 생각났을 수도 있지만요. 사실 이건 그냥 제 견해이고 전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고 두번째는 셰어스타일이 아닐까 싶네요. 트랜스젠더라기보단 그저 드랙퀸에 지나지 않던 외모를 다듬어 여성화시키고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헤드윅의 여성성을 극대화시켜서 앵그리인치만큼 채워지지 않는 여성성에 대한 동경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그런 헤드윅이었던거 같아요. 뭐 연출이 제시한 비전이 어떤 것이었던 적어도 피상적으로 보고 즐기던 공연에서 지나치게 사유하게 만들었던 공연이었네요.
김재욱 전혜선 (김재욱 막공)
* 유럽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한국남자들은 어릴때부터 슬픔이란 감정표현을 억압받아옵니다. <남자는 울면안된다.>란건 현재까지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병약한 마초들이 많습니다. 마초로 태어난 사람들이나 마초즘을 유지하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억지 마초로 살아가다보니까 외강내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뭐 저도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슬픔을 표현하는 것보다 슬픔을 억누르는걸 더 아프게 다가와합니다. 슬픔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공감을 얻으니까요.
제가 바로 전에 봤던 김재욱의 헤드윅은 울지않아서 더 슬펐고 이번에 본건 너무 울어서 되려 저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잘하는 분들은 조금은 다르겠죠. 사실 헤드윅이란 작품의 내용은 그자체로 이미 너무 슬픈데 너무 우니까 무대에서 그저 한풀이만 하는거 같기도 하고 '슬픈건 알지만 이렇게 사람들 많은데서 그것도 공연 중에 그렇게 울어야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셀/헤드윅 슈미트는 트랜스젠더이고 이츠학은 드랙퀸이죠. 육체적 성별은 헤드윅은 여성이 된 것이고, 이츠학은 여전히 남성입니다. 실제론 헤드윅은 여배우가 했어야했을수도 있고 이츠학은 영화처럼 남자배우가 해야했겠죠. 물론 헤드윅이 나중에 토미가 되야하니까 남자배우가 헤드윅을 하는게 맞겠지만요. 저도 머리속으로 정리가 안되는 가운데 타이핑하고 있는데, 김재욱의 눈물의 헤드윅이 그가 연기했던 헤드윅이 이란 이야기속에 한셀/헤드윅은 언제부터 그렇게 울었을까요. 한셀도 유년시절만 놓고 봤을땐 억압받고 감정을 절제당해왔으니까요. 아마 그 물꼬를 틀어준게 음악이었겠죠. 예술은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속에 완성되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하여 한셀/헤드윅은 유년시절부터 흘리지 못했던 모든 눈물을 하룻밤 공연에 완전히 탕진해버리고 모든걸 산화하고 본인마저도 산화시켜버렸죠.
* 전혜선 이츠학은 헤드윅을 미워하는 전형적인 이츠학을 보여주는데요. 저 개인적으론 츤데레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서포트역할을 하면서 엉터리로 할 수 도 있는대 해야할 일 다하면서 증오를 드러내니까 제가 보는 느낌은 '딱히 널 위해 이런걸 준비하는건 아냐.'란 느낌이죠. 욕하고 분노하고 반항할거 다해가면서 챙길건 다 챙겨주고 슬쩍 슬쩍 쳐다보며 발그레해하지만 헤드윅과 눈이라도 마추지면 잡아먹을듯 미워합니다.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가 보통 그냥 헤드윅의 백업보컬이자 스테이지 매니저같은 관계에 그치는데요. 이번 버젼 전체적으로 그런지 다양한 관계가 보이네요. 서로 다른 방법의 사랑으로 말이죠. 어쨌든 헤드윅은 산화했지만 이츠학은 드랙퀸으로서 살아가겠죠.
* 사실 이전 공연의 헤드윅은 그저 드랙퀸같긴만 했습니다. 사실 원작 헤드윅이 드랙퀸같았죠. 헤드윅은 드랙퀸이 아닌데란 생각은 들었지만, 트랜스젠더와 드랙퀸의 차이는 미첼이 더 잘알아서 잘했겠지만요. 혹은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여성화가 되는건 아니어서 과한 화장과 요란스런 치장을 해야했는지도 모르죠. 존 미첼의 의도가 그러한건지 아님 미국쪽 트랜스젠더들은 다 드랙퀸처럼하고 다니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사실 그쪽 세계를 피상적으로만 알지 제대로 알아볼 기회도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았거든요. 적어도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을 통해 여성으로서 살아가면 되고 드랙퀸들은 게이이기도 하고 그저 여장자체를 좋아하기만 하는 경우라고 알고 있어서 말이죠. 이번 헤드윅에선 첫의상은 반짝이 매니아인 중년여인같은 느낌이고 두번째 의상은 갑자기 브라이스 인형이 생각나더군요. 브라이스 인형이 딱 어떤 스타일이 있는건 아닌데 이건 브라이스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님 김재욱이 입었기때문에 브라이스 인형이 생각났을 수도 있지만요. 사실 이건 그냥 제 견해이고 전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고 두번째는 셰어스타일이 아닐까 싶네요. 트랜스젠더라기보단 그저 드랙퀸에 지나지 않던 외모를 다듬어 여성화시키고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헤드윅의 여성성을 극대화시켜서 앵그리인치만큼 채워지지 않는 여성성에 대한 동경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그런 헤드윅이었던거 같아요. 뭐 연출이 제시한 비전이 어떤 것이었던 적어도 피상적으로 보고 즐기던 공연에서 지나치게 사유하게 만들었던 공연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