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theatre

말괄량이 길들이기 : 퓨젼하고도 진하게 느껴지는 고전의 향기

단열했니 2008. 9. 18. 01:42

말괄량이 길들이기 - 세종 M 씨어터
9월 17일(유료시연회)


이 감상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근데 이 작품을 볼 생각이 없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글이고 이 작품이 미리 알고보면 재미없을정도의 플롯이 있는 작품은 아니니 그냥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최고의 코메디 중에 하나 그러나...
아무리 세익스피어를 좋아해도 이 작품을 보는 여성들을 뜨악할수 밖에 없다. 굉장히 즐거운 작품이지만 왈패나 말괄량이라고 불리는 정도의 여성이지만 그저 자기 주장을 할뿐인거고 그저 제멋대로인 것뿐인데 못쓸 여자라며 비난받고 노처녀로 늙어죽을 여자 취급을 받으며 결국 터프한 남자에게 돈때문에 팔려가 죽을만큼 괴롭힘 당하고 여자는 남자에서 순종하며 살아야한다고 여러 사람에게 선언하며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을 여자 입에서 내밷는 작품이기때문이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키스 미 케이트>는 20세기에 올리기에도 좀 민망한 작품을 제법 고쳤고 개인적으론 이 작품을 연극으로 올린다는 광고를 봤을때 대체 어떻게 뜯어고칠지 기대감불안반으로 가서 보게 되었다.

잠시 윌리엄 세익스피어에 대해...
개인적으로 윌리엄 세익스피어에 팬이다. 그의 전작을 읽어보진 못했는데..(한때 시도했는데 그의 시대극에서 무릎꿇었다. 헨리.. 뭐뭐 시리즈들은 솔직히 너무 지겨웠다.) 비극과 희극은 제법 섭렵한 편이고 특히 희극을 좋아한다. 스토리라인은 주로 개연성 없는 엉성한 플롯 투성이지만 그냥 시대적인 분위기로 가볍게 웃어넘기는 기조가 마치 뮤지컬 같고 길지만 그 주옥같은 대사와 시들은 희곡자체가 그냥 뮤지컬같아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래서 팩션이지만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너무 좋아한다. 한 10번은 본것 같은 이 영화는 너무나도 궁금한 세익스피어 시대의 무대공연을 재연한 모습이 제법 그럴듯하고 스토리라인은 팬픽수준의 그것일지 몰라도 바로 내가 그의 팬이니 이런 팬픽은 대 환영인 것이다. 말도 안돼고 어이없는 내용이라도 용서된다 세익스피어니까. 그의 작품 제목 중에 이런 제목이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 세익스피어를 설명하라고 하면 한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문장이랄까.
 
여기도 퓨전 고전극이냐?
개인적으로 전훈씨의 <유리가면>을 좋아한다. 나의 첫 연극이어서 그럴런지도 모르지만 내가 전훈씨의 <유리가면>에서 받았던 컬쳐쇼크를 줬던 수준의 작품을 아직 만난적이 없기때문에 전훈씨 작품에 대해 왠지 믿음이 갔다. 남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연출하는 감각이 있는 그의 연출력은 이 작품에서도 이어졌다. 맘마미아를 연상시키는 중앙의 원형 회전벽은 굉장히 단조로움에도 잦은 회전으로 인해 역동적인 전개가 가능해졌고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원전에 충실한 시대이면서 의상과 대사방식은 현대와 고전을 섞었고 약간의 동양적인 색채를 더했다. 베로나에서 왔다는 페투루치오는 마치 일본에서 온것 같은 모습에 키치적인 인력거를 끌고 등장한다. 중국인같은 하인도 있고 뭐 성공적인 퓨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고리타분하지도 않았으니까 나름 거슬리지 않고 볼수 있게 되었다. 나름 여러번 읽은 나도 만족할 정도로 기존 스토리라인과 대사를 살린채 전개했는데 무척 지루해질수 있는 작품을 꽤나 유니크하게 전개해주어서 인터미션 15분 포함 2시간 15분이나 되는 공연이 금새 지나 갔다. 비교적 세익스피어 원전을 손대지 않은 채 이정도 해냈다는 것만으로 사실 박수 받을 만 하다고 본다. 게다가 케이트역의 강지은씨의 연기력이 너무 좋았다. 이 분이야 말로 <마이 페어 레이디>에 어울리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초반과 후반의 변신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중앙의 원형무대는 뮤지컬팬들은 딱봐도 <맘마미아>에서 베꼈다는 소릴 안들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 무대를 이용하는 방법도 <맘마미아>와 동일했다. 원형무대의 바퀴소리가 너무 커서 무대가 돌아가면서 치는 대사는 안들릴 지경이었고 무대를 좀 변화해주었어야하는 부분도 있는데 너무나도 안일하게 조명으로 간단히 처리한 것도 아쉬웠다. 그리고 여자에 도리에 대한 독백은 케이트에게 중요한 대사인데 이 타이밍이 아닌데 싶은 부분에서 나온다 싶었는데 사실 이 대사는 라스트씬에서 모두 모인자리에서 어느 부인이 남편의 말을 제일 잘듣나 시험하는 부분이 있는데 케이트의 독백 자체도 21세기에선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런 부분까지 나오면 아무래도 여성관객들이 많이 불쾌할거라고 생각했는지 그 부분을 삭제해버리고 좀 묘한 타이밍에 나오는데 이게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게 묘한 타이밍이라곤 했지만 생각외로 그리 이상하지 않은 타이밍이었기때문에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갈 정도는 되는거 같다. 물론 덕분에 라스트씬이 매우 심심해졌다. 어차피 관객들은 나오면서 말괄량이 케이트가 여자의 도리에 대한 독백에 뜨악한 반응을 보였으니 그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근데 이 작품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바로 개가 나온다는 것이다. 동물이다! 살아있는 동물! 나름 공연을 보러다녔다고 할순 없어서 좀 그렇지만 연극무대에서 동물이 나오는 건 생전 처음봤다. 그리고 이 글 초반에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언급한 이유가 이 문장을 쓰기 위해서다. 당시 세익스피어시대의 쉽게 공연을 성공시키는 법에 무대위에서 동물하고 같이 코미디하기인데 마치 그걸 한번 해보자는 느낌으로 동물을 무대에 출연시킨게 굉장히 세익스피어스럽다는 느낌인게 나혼자만 받았을까? 원전에 충실한 공연을 하자는 컨셉으로 진행된 공연이니 만큼 무대에 동물까지 출연시킨다는 발상이 나에겐 너무나도 환상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게다가 개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세익스피어팬이라면 강추!
여성의 도리부분에서 뜨악하지만 않는다면 고전의 향기를 느끼며 작품을 즐길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세익스피어 작품은 엉성한 플롯과 엄청난 대사량때문인지 어떤 작품들은 정말 플롯하고 캐릭터 이름만 따오고선 세익스피어 작품이라고 우기는데 솔직히 그런 작품들 중에 좋은 작품도 있지만 원전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그 대표적인 예로 뮤지컬<햄릿>을 꼽고싶다. 좋은 뮤지컬임엔 틀림없지만 그 작품은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익스피어 간판만 걸고 속은 다른 작품들이 질릴때쯤 용감하게 세익스피어를 살린 작품을 만나는 기분은 꽤나 즐거운 것이었다. 너무나도 재미있고 고전의 향기에 매료된 작품이었다.